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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할 만큼 다 했다
2024년 7월 21일, 한국 음악계의 큰 별이자 예술계의 거목인 김민기 가수님이 별세하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오늘 7월 24일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에서 그의 여정을 마감하는 발인이 있었습니다. 그의 '고맙다 할만큼 다 했다' 마지막 말이 남은 사람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유족은 배우자 이미영씨와 슬하에 자녀 2남이 있다고 합니다. 암투병 중에도 남은 가족과 학전 식구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늘 하셨다고 합니다.
김민기님은 지난 7월 21일 밤 8시 26분에 위암 증세 악화로 인해 항암치료를 받던 중 별세하셨습니다. 향년 73세입니다.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 통원 치료 중이였다고 합니다. 19일에 갑자기 악화되어 다음날 병원에 이송되었고 일요일 밤에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발인식은 별도의 영결식 없이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만이 참여하는 조용한 이별을 고인이 원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인은 '본인으로 무언가를 만들지 말라'는 말도 전했다고 합니다.
발인식 후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아르코꿈밭극장 마당을 잠시 방문한 뒤, 그의 마지막 안식처인 천안공원묘원에 안장될 예정입니다.
아르꼬꿈밭 극장은 고인 김민기님이 33년 동안 운영한 '학전'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가수로서 예술가로서 대표로서 예술적 유산을 기리기 위한 의미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고인의 마지막 길로 정해졌다고 합니다.
정말 많은 예술인들과 대중들이 학전에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동행할 것 같습니다.
김민기 가수 history
☞ 출생 및 초기 활동: 1951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회화과 재학 중 포크송 듀오 '도비두'로 음악활동 시작
☞ 음악 활동: 1971년 첫 앨범 아침이슬, 가을 편지, 꽃 피우는 아이 등 여러 민중가요를 작곡
☞ 금지곡과 탄압: 박정희 정권 시절, 음반 판매 금지 조치를 익명으로 작곡 활동을
김민기님은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10남매의 막내로 태어났고 별세하는 마지막 날에 보고 싶은 가족들 잘 만나고 떠나셨다고 합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재학 중 포크 밴드 활동을 시작하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쏟았습니다.
1971년 첫 정규 앨범을 발표하며 공식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이 앨범에 수록된 '아침이슬'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아침이슬'은 김민기님의 대표곡으로,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곡은 이후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노래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김민기님은 '꽃 피우는 아이', '봉우리', '내나라 내겨레' 등 다양한 곡을 발표하며 정권에 저항하고 청년 문화의 상징으로 부각되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시대를 초월하여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그의 곡들은 그 시대의 혼과 정서를 담아내어 오늘날에도 깊은 감동을 줍니다.
'아침이슬' '봉우리'는 많은 이들을 울렸고 애착을 가진 곡으로, 가사의 깊이와 그의 독특한 음색이 어우러져 많은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학전 history
김민기님은 음악 외에도 연극과 뮤지컬 분야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1994년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을 설립하여 공연 문화를 선도하였고,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2023년까지 8000회 이상의 공연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시대상을 반영하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예술 공간의 상징이였던 학전은 고인의 위암 투병 소식이 지난 11월 학전 폐관 결정에 이르렀고 35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3월 15일에 폐관을 하였습니다.
안타까운 소식에 모였던 가수들과 배우들이 학전 공간에서 마지막을 함께 하였고 이 소극장을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사용하기로 고인의 뜻을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앞으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새단장하여 '아르꼬꿈밭극장'으로 재개관을 하였습니다. 그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부모님들은 학전을 떠올리며 고인도 추억할것 같습니다.
김민기 가수를 보내며
고 김민기 가수는 우리나라 문화와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동 시대를 살았던 대중들은 가슴이 먹먹할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시대는 아니지만 노래는 많이 들으면 20대를 보냈었습니다.
지금도 봉우리 그 깊고도 낮고 그러면서 웅장한 음색이 귀에 맴돕니다.
혼란스럽던 정권 시절 음악으로 시대를 반영할 뿐 아니라 청년들이 그리고 어른들이 나가야하는 미래에 대한 메세지로도 충분하였습니다.
고 김민기 가수님의 음악은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불리고 회자되고 기억될 것 입니다. 또한 그가 선도하고 이끌었던 문화도 오랫동안 우리나라 문화의 중요한 페이지로 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